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스페른-에슬링 전투 (문단 편집) == 배경 == 나폴레옹이 [[빈(오스트리아)|빈]]을 함락시키는 와중에 [[도나우 강]]을 건너는 다리가 무너져 버렸다. 한편 카를 대공이 지휘하는 부대는 왼쪽 강변에 있는 코르노이부르크(Korneuburg) 근교의 비삼베르크(Bisamberg)에 주둔하였다. 프랑스군은 도나우 강을 작은 수로로 나누는 무수한 섬들 중 하나인 로바우(Lobau)를 도하 지점으로 선택하여, 이곳을 통해 도나우 강을 건너려 하였다. 신중한 준비 끝에 5월 19일에서 20일 동안 오른쪽 강변에서 로바우로 향하는 프랑스군의 다리가 세워졌고, 얼마 안 가 프랑스군은 섬을 장악할 수 있었다. 20일 저녁까지 프랑스군의 대다수가 섬에 집결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도나우 강에서 강을 건너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로바우와 좌측 강가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 [[앙드레 마세나|마세나]](Masséna) 원수 휘하의 군단이 냉큼 강을 건너 좌측 강가에 도달했고, 오스트리아군의 전초부대와 격전을 벌였다. [[티롤]](Tyrol)과 [[보헤미아]](Bohemia)에서 군이 출진하여 후방에 강력한 공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이를 막는 병력을 제외한 모든 병력으로 하여금 강을 건너게 하였고, 21일 세벽이 될 무렵 약 40,000명의 병력이 도나우 강 좌측에 위치한 너른 평원이며 훗날 [[바그람 전투]](Battle of Wagram)의 전장이 되는 마르히펠트(Marchfeld)에 집결하였다. 카를 대공은 프랑스군의 도강을 저지하지 않았다. 카를 대공은 적당한 숫자의 프랑스군이 강을 건너고, 강을 건널 준비를 하는 프랑스군이 이미 도강한 프랑스군을 지원하지 못할 상황에 기습을 가할 생각이었다. 나폴레옹 역시 공격의 위험성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가능한 모든 부대를 전장에 집결시켜 이동시간을 최소화하려 하였다. 마르히펠트에 있는 나폴레옹의 군대는 북쪽을 향하여 다리의 전면에 늘어섰다. 이렇게 배치된 프랑스군의 좌익은 아스페른(그로스 아스페른 Gross-Aspern)에 위치했고, 우익은 에슬링(혹은 에슬링겐 Esslingen)에 위치했다. 두 곳은 모두 다뉴브 강에 가까이 붙어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적에게 넘겨줘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아스페른은 사실, 도나우 강의 강변이라기보다는 강의 지류중 하나에 접해 있었다. 프랑스군은 마을 사이에 빈 공간을 채우고 지원 부대가 전열을 구성할 수 있도록 앞으로 이동하였다. 요한 폰 힐러(Johann von Hiller)(Ⅵ), 하인리히 폰 벨레가르드 백작(Heinrich Graf von Bellegarde)(Ⅰ), 그리고 프란츠 자비에르 추 호엔촐레른헤힝겐(Franz Xavier Prince zu Hohenzollern-Hechingen)(Ⅱ)[* 프로이센 왕가의 가문으로 알려진 호엔촐레른 가문 출신으로 얄궂게도 1770년부터 오스트리아에서 복무하여 [[프로이센 왕국|잘 나가는]] 프랑켄파 방계친척 프리드리히 대왕과도 싸운 적이 있다. 사실 호엔촐레른헤힝겐은 북부로 건너간 프랑켄파와 달리 신성로마제국에 남은 슈바벤파 호엔촐레른 가문의 주요분파였지만,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대두로 인해 신성로마제국이 산산조각나면서 일부는 친나폴레옹인 라인연방으로 일부는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갈리는 비극을 겪었는데, 결국은 나폴레옹 휘하에서 복무했지만 막판에 줄을 잘 건너탄 이 사람의 큰조카가 호헨촐레른헤힝겐의 작위와 영토를 계승했다.]이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은 아스페른 방면에 집결하였다. 한편 프란츠 폰 로젠베르크오르시니 후작(Franz Fürst von Rosenberg-Orsini)(Ⅳ)은 에슬링을 공격했다. 중앙에 있던 리히텐슈타인의 요한 공(Prince Johann of Liechtenstein's)의 오스트리아 기병대는 오스트리아군 종대의 머리부분을 공격하려 하는 프랑스군에 대응하여 움직일 준비를 하였다. 21일 동안 프랑스군이 도하를 준비하는 다리는 물살이 거세짐에 따라 갈수록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휴식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강을 건넜으며 밤에도 마찬가지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